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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9-09 오후 4: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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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현대 한국불교 명저 58선>에 대한 서평 _ 김호성(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

조회수 : 1119

글내용

읽지 않을 수 없고, 쓰지 않을 수 없다

오랜만에 들른 민족사. 윤창화 선생(이하, ‘저자’로 약칭함)이 책을 한 권 건네주신다. 자신의 저서 『근현대 한국불교 명저 58선』(이하, 『명저 58선』으로 약칭함)이다. 저자는 여러 해 전부터 ‘재야 불교학자’로서, 논문 발표와 저서 출판 등을 병행해 오고 있다. 이전에도 여러 권의 저서를 얻었다. 미안한 말씀이지만, 솔직히 말씀드려서, 한 권도 온전히 다 읽지는 못했다. 얌전히 모셔두기만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민족사를 나서서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부터 나의 독서는 시작되었다.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이 서평(書評)을 쓴다.

읽지 않을 수 없고,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어디 있을까? 물론 저자와 나의 삼십년에 걸친 인연사(因緣史)로 설명되어질 수는 없다. 그 삼십년의 인연사는 공부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런 인연사가 있었음에도 지난 해에 받은 『왕초보, 선박사 되다』에 대해서는 서평을 쓰지 않았던 것 아닌가. 그럼 왜 나는 이 『명저 58선』에는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까?

내게도 남이 모르는 한(恨)이 있어서이다. 혹 기억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 저술목록에는 『책 안의 불교, 책 밝의 불교』(시공사, 1996. 이하 『책 안의 불교 〜』로 약칭함)라는 책이 한 권 있다. 40권의 책에 대한 서평을 모은 것이다. 『명저 58선』은 2003년 4월부터 2005년 말까지 『법보신문』에 연재된 것이 기본이 되었고, 나의 슬픈 『책 안의 불교 〜』는 1994년 10월부터 1996년 8월에 걸쳐서 『법보신문』에 연재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명저 58선』을 보면서, 나의 아픈 과거가 되살아났다. 책을 쓰는 모든 이의 소망은 무엇이겠는가? 바로 “읽히고 싶다”는 데 있지 않겠는가? 1996년 11월 11일. 『책 안의 불교 〜』가 태어났을 그 때, 나는 꿈에도 “교수가 되겠다”라거나 “교수가 될 수 있겠지”라고 생념(生念)한 적이 없다. 당시 나의 꿈은 ‘저술가’로서의 삶에 있었다. 그런 꿈의 실현 과정에서 『책 안의 불교 〜』는 태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이 꿈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책 안의 불교 〜』는 이미 죽은 지 오래되었다. 초판 2쇄는 끝내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내 꿈은 깨어졌다. 그렇게 내 ‘젊은 날의 초상’ 같기도 한 『책 안의 불교 〜』는, 『명저 58선』과 같이, ‘책에 대한 책’이었다. 왜 나는 실패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결론은 이랬다.
나도 잘못하지 않았고, 출판사(당시 불교책 편집자 : 상현숙 선생)도 잘못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는 너무 시대를 앞서 달렸을 뿐이었다. “책조차 읽지 않는데 책에 대한 책을 어찌 읽겠는가!” 이후 우리 불교계에는 ‘책에 대한 책’이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법정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문학의 숲)이 있는데, 이는 다른 분의 편집이 게재되었다 한다. 그렇게 되면 어디까지가 법정스님의 글로서 평가해야 할지 알기 어려워지는 어려움이 있게 된다. 그리고 이제 저자의 『명저 58선』이 세상에 나왔다.

아, 이제 우리의 불교계도 변했던 것일까? 변하는 것일까? 물론 『명저 58선』에 비하면, 내 『책 안의 불교 〜』는, 어떤 면에서는 심하게 부끄럽기도 하다. 혹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른 성격의 책이라 해서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 이야기를 차차 털어놓기 전에, 왜 내가 『명저 58선』을 읽지 않을 수 없었는지,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는지 먼저 밝혔다. 내게는 한(恨)풀이가 필요해서이다. 오, 불쌍한 나여!


책의 역사, 책으로 보는 역사

『명저 58선』은 약 100년의 세월(정확히는 1900 〜 1996) 동안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불교책들 중, 명저라고 할 만한 책 58권을 가려 뽑아서 평한 글을 모았다. 어떤 책을 명저라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간접적인 대답을 저자는「선정기준」이라 하여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불교학계나 교단, 승단, 불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책, 독창성 있는 연구를 통해 불교 및 불교학의 수준을 향상시킨 책, 학문적으로 기여한 바가 있는 책, 해당분야에 오랫동안 일정한 역할을 한 책, 새로운 시각과 관점, 해석을 시도한 책, 참신한 주제를 통해 불교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인 책, 불자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준 책(9쪽)

이러한 「선정기준」을 세워두고서, 저자는 수많은 책을 읽고 또 읽어간다. 넣었다가 뺐다가 했을 것이다. 적지 않은 고심(苦心)이 행간에 배어있다. 그러면서 하나하나의 책들을 소개하고 평가한다. 그런 점에서 이 『명저 58선』은 분명 서평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명저 58선』의 성격을 ‘서평 모음집’으로 규정한 채 돌아서고 만다면 저자에게는 못내 섭섭한 일이 될 것이다.

이 점은 참으로 중요하다. 『명저 58선』은 단순한 서평 모음집만은 아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는 서평 모음집이 맞지만, 결코 그 내면은 그렇지 않다. 그 안에까지 들어가서 읽어본다면, 『명저 58선』은 역사서(歷史書)이다. 책을 통해서 본 근현대 한국불교의 백년사(百年史)이기도 하고, 한국불교출판문화의 백년사이기도 하다. 전자는 그러한 성격까지 드러나 있다는 뜻에서 부여한 의미라고 한다면, 후자는 저자의 가슴 속에 들어있던 말이다. 하나하나의 책에 대한 본격적인 서평에 들어가기에 앞서, 저자는 「근현대 불교출판의 역사」라는 총론을 집필하고 있다. 10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거시적으로 조망해 보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역사는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 하지 않던가. 잘한 것은 잘했다 하고, 못한 것은 못했다 하는 것 말이다. 상찬(賞讚)하기는 쉬워도 비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비판이 없다면 역사서라 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함량미달의 책으로서 무어라 논하기가 어렵다”(37쪽), “생각보다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책이다.”(38쪽) 이렇게 냉정한 평가를 받는 책은 『명저 58선』에 이름을 아예 올리지 못했다. 그렇다. “좋은 시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끝이 없는데 굳이 나쁜 시를 드러내놓고 논하겠는가” 라고 한 어느 문학평론가의 말이 생각난다. 더욱이 “우리 집안의 불사를 찬탄할지언정, 우리 집안의 허물을 드날리지 말라”(보조지눌, 『계초심학인문』)는 가르침까지 있지 않던가. 그래서 먼저 칭찬하고 나중에 비평하기도 하고(『선의 세계』의 경우), 먼저 비평하고는 나중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리기도 한다(『한국불교사개설』의 경우).

또 『명저 58선』을 역사서로 보는 결정적인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그것은 저자의 눈이, 이 책들이 나왔을 당시의 시대상황과 그 안에서 이 책들이 담당했던 역할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의 『책 안의 불교 〜』와 크게 다른 점이다. 나는 역사 보다는 철학을 지향한다. 『책 안의 불교 〜』는 내 눈에 비친 그 하나하나의 책들이 내게 다가와서는 어떤 의미가 만들어졌는지, 그 책들이 나의 일부분으로 어떻게 다시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두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다르다.

이에 더하여 이 책을 역사서로 만드는 데 크게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은 사진들이다. 저자, 책 표지, 그리고 당시 책을 선전하던 광고 사진까지. 사진과 사진에 덧보탠 설명만 보는 것으로도 백년의 불교문화사를 떠올리게 한다.

언젠가 저자는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책으로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손꼽았다.(아마도 『대중불교』의 커버스토리에서였던 것같다.) 그렇게 역사서로부터 자기학문의 길을 열어온 저자의 내공(內功)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글의 제목을 단재 신채호 선생의 표현을 빌어와서 “불교출판문화사 일백년래 일대사건”이라 하였던 것이다.


학인들에게 고(告)함

『명저 58선』은 서평 모음집일 뿐만 아니라 역사서라고 했다. 아니, 가장 뚜렷한 특징은 역사서라고 자리매김하였다. 책의 백년사, 책으로 보는 우리 불교의 근현대 백년사를 조망하고 정리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그런데 사실 책을 읽다 보면 그것만이 아니라는 점을 쉽게 느끼게 된다.
『명저 58선』의 성격을 더 생각해 보면, 불교입문서로서도 기능할 수 있다. 불교의 많은 영역이 소개되기 때문이다. 경전이나 선에서부터 불교미술, 불교문학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 잠언집(箴言集)이기도 하다. 특히 저자는 명언 · 격언 · 금언 · 잠언류에 유독 예민하다. 명저의 저자들이 남긴 잠언에도 예민할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 명언 남기기를 무척 좋아하는 느낌이다. 예를 들어 본다.

‘이(것으)로써 끝이 올씨다’ 하는 철학이 어디 있는가? ‘라피니’라는 것은 예술에는 없는 것이다. 따빈치의 사전에는 완성이라는 단어가 없다. 그에게는 영원한 ‘로고스’가 있을 뿐이다. 예술은 완성될 수 없으므로 영원한 것이다.(275쪽)

어찌 농사꾼이 잡초를 그냥 둘 수 있겠는가? 또 악(惡)이 없다면 선(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친일의 부끄러운 그림자가 없다면 어찌 항일이 강렬한 색채를 발할 수 있겠는가?(251쪽)

전자는 『조선 탑파의 연구』의 저자 고유섭(高裕燮) 선생의 명언이고, 후자는 저자 자신의 명언이다. 그런데 사실 저자가 토해내는 명언들을 들을 때마다, 명색 학자인 나같은 사람은 적잖이 부끄럽기도 하고, 옷깃을 새삼 여미게도 된다. 그 잠언들 중에는 학자들, 학인들에게 고하는 말이 많기 때문이다. 그 중에 역시 압권(壓卷)은 「머리말」에 나오는 명언이다. 공자의 언행을 빌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공자는 자신의 언행집 『논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이 40이 되어도 이렇다 할 것이 없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볼 것이 없다.”
나는 공자의 법언(法言)을 읽을 때마다 마치 내 자신을 질타하는 것같아 깊은 상념에
잠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7쪽)

이 공자님 말씀의 출전을 여쭈었더니, 저자는 『논어』의 자한(子罕)편이라 대답해 온다. 저 유명한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성어(成語)가 나오는데 대목에서인데, 『논어』의 원문에서는 “나이 40이나 50이 되어도”라고 되어 있다. 저자는 그 중에서 앞 부분만을 인용했다. 그만큼 더 준엄해 졌다. “나이 40”이전에, 뭔가 자기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루어야 겨우 돌아볼 만하고, 그때까지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면 평가할 것이 없으리라는 준엄한 경책(警策)의 말씀이다.

하긴 그렇다. 고유섭 선생은 28세에 개성박물관 관장을 지내셨고, 석지현 스님은 31세에 『선시』를 편역하고 평설(評說)하셨다. 천재는 있다! 늦었다 해도, 이기영 박사는 나이 45세에 『원효사상』이라는 명저를 집필했던 것이다. 50이전의 일이었다. 이러한 예들을 생각하면, 책 표지 겉에 빠알갛게 띄지까지 씌워서 “나이 40이 되어도 이렇다 할 것이 없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볼 것이 없다”고 한 저자의 속내가 다소는 짐작이 간다. 이건, 학자들에게 내미는 사관(死關)이다. “여기서 죽을래? 살아서 통과할래? 일러라, 어서 일러라”하는 것같다.

“나이 40”론과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그의 “대표작”론이다. 총론이라 할 「근현대 불교출판의 역사」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책은 결과물이다. 결과물을 고찰하지 않고 학문의 성과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히 학자는 그렇다. 명성은 대단했으나 대표작이 없는 경우도 있고, 많은 글을 발표했으나 이렇다 할 책이 없는 이도 많다. 잡문을 쓰는 사람으로서 대표작이 없는 것은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학자로서 대표작이 없는 경우는 애석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19쪽)

사적으로 들은 것이지만, 저자는 “나이 50이전에 대표작이 있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외면서 학자들의 정진을 기대해왔다. “불교학 발전을 위하여 전력투구하는”(초창기 민족사의 편지봉투에 쓰여있었던 구호) 민족사 사장으로서, 30년 동안 불교학을 지켜보고, 마침내는 본인 스스로 불교학자(특히, 禪학자)로 입신(立身)한 분이 내건 깃발인 셈이다.

“더욱이 90년대 후반부터는 학제개편으로 인하여 인문학이 빠른 속도로 쇠퇴했고, 경제적으로 풍요해짐에 따라 학구열은 갈수록 저하되”(58족)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래도 저자는 학자들의 각성을 촉구해 마지 않는다. 그것은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서 저술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허상을 쫒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좀 길지만 다시 자세히 읽어보아야 할 말씀이다.

우리는 선대(先代)의 훌륭한 철인(哲人)이나 고승들이 남긴 저술과 삶, 정신세계를 통하여 올바른 길과 행위, 가치관을 배운다. 훌륭한 삶을 살았던 선지식들의 정신을 배우는 길은 오직 그들이 남긴 저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저술이 없으면 아무리 그 시대를 호령했다 해도 50년을 넘기지 못한다. 문자를 부정했던 선승들도, 명예에 초연했던 고승들도 어록(語錄)이 없는 이는 살아남는 자가 드물다. 그러므로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훌륭한 저술을 남겨야 한다. 저술이 없다면 그의 삶과 깨달음의 세계는 개인적인 가치관일 뿐, 만인이 거울삼는 공적(公的)인 가치관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부질없는 허상을 좇지 말 일이다. 일찍이 부처님께서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이라고 갈파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행자들은 명예의 허상, 물욕의 허상, 지식의 허상을 쫓아가고 있다.(96쪽)

이런 까닭에 나는 『명저 58선』을 “학자에게 고(告)함”으로 읽는다. 다가올 미래에 우리 불교학의 내일을 짊어져갈 “학인에게 고함”으로도 읽히는 것이다. 이런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나 자신은 한없이 부끄럽지만 그 말씀의 취지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우리나라의 불교학도라면 필독(必讀)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러한 학문하는 자세(工夫方法論)를 우리 후학들이 몸에 익혔으면 해서이다. 특히 젊은 학인들의 일독(一讀)을 권한다.


내가 얻은 연구주제

책은 책을 낳는다. 책이 또 다른 책을 낳지 못할 때, 비로소 책은 죽음을 맞이한다. 다만 또 다른 책을 낳으려면 그 ‘어머니 책’에 무수히 많은 깨침과 문제들이 담겨있어야 한다. 『명저 58선』에는 여기저기 보물이 숨겨져 있다. 보물찾기에 나서는 독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 독자가 언제 와서 어떻게 보물을 찾아갈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좋은 책의 저자들은 언제나 먼 미래에 올 독자들까지 염두에 두면서 책을 썼던 것이다. 마치 부처님께서 “만대(萬代)에 의지할 것”으로서 경전을 설한 것과 비슷하리라.

그런 점에서 여기서는 남겨진 숙제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선, 나 개인적으로 얻은 “숙제목록”이다. 물론 이 숙제는 다른 분들이 풀어도 좋으리라 본다. 그렇다면 내가 애써 숙제를 다시 할 필요는 없게 될지 모른다.

첫째, 김동화 박사의 『불교학개론』에 대해서 저자는 본글을 다 쓴뒤, 「덧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일본의 불교학자 우이 하쿠쥬(宇井伯壽)의 『불교범론(佛敎汎論)』을 바탕으로 서술한 책이다. 또 저자 자신이 오래도록 일본에 유학한 탓인지, 인도 · 중국 · 한국 불교에는 없는 일본불교의 학설과 교리, 일본 고승들의 언구(言句) 등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2편(법보론) 4장 5절의 육대연기설(六大緣起說)은 일본 진언종의 개조 공해(空海, 774 〜 835)가 주장하는 학설이고, 6절의 ‘불게연기설(佛界緣起說)’ 그리고 ‘진언종’에 대한 부분 등도 일본불교의 학설이다.(147쪽)

이 부분은 좀더 조사연구가 필요한 것같다. 김동화 박사는 우리나라 근현대 불교학의 개척자 중 한 분으로서, 그분의 학문에 대한 연구사적 평가가 본격화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권오민 교수의 글이 『문학 · 사학 · 철학』에 발표된 것으로 기억된다.) 왜냐하면 가나오카 슈유(金岡秀友)의 저서 『밀교철학』(원의범 역, 경서원)을 읽었을 때, “아, 밀교에 대한 현대의 이해라고 하는 것도 이미 구카이에 의해서 다 행해진 것의 반복이구나” 하는 느낌을 내 스스로 받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밀교(적어도 중기밀교)의 체계화에 끼친 구카이의 업적이 워낙 방대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해 본다.

‘불계연기설’을 말하는 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계연기라는 숙어는 아직 불교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학계에서도 2, 3의 학자에 의하여 제목만은 사용된 적이 있었지만은 이론적으로는 소개된 일이 없다. 그러나 사상 교리, 특히 불교를 종교적으로만 본다면 중요한 교리이므로 이에 이것을 고찰 하고자 한다. 이 학설은 일본 일련종 종조인 일련(日蓮)에 의하여 주창된 사상으로서 연기설로서는 최고단(最高段)에 처(處)하는 학설이라 할 수 있다.(『불교학개론』, 보련각, 294쪽. 현대어로 바꾸어서 인용함.)

단순히 일본에 오래 유학해서 일본불교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라고 이해하게 되면 좀 평가가 절하될지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소극적 · 수동적 영향관계에서 파악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일본불교의 사상까지도 개론서 속으로 가지고 와서 평가하고 있다는 점, 이러한 점은 일본에서도 드문 일이었다는 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살펴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일본불교에 대한 편견없는 이해와 수용 그 자체가 선구적이라 말해서 좋을 것이다.

둘째, 고형곤 박사의 『선의 세계』에 대한 부분에서 나는 다소 보완하고 싶은 점과 앞서와 같은 또 하나의 연구 주제를 발견한다. 전자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특이한 점은 선어록 인용에 있어서 중국 선승들의 어록보다는 고려시대의 선승인 보조지눌과 그의 제자 진각혜심, 그리고 함허득통의 어록을 많이 인용하여 텍스트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우리 것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훌륭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179쪽)
과연 “우리 것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한” 이유에서 보조지눌, 진각혜심, 그리고 함허득통의 어록을 인용하여 텍스트로 삼았던 것일까? 그보다는 좀더 깊이 볼 수 있지 않을까? 보다 심층적인 사상적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김잉석 박사가 “한국의 화엄학은 중국 화엄종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형성된 화엄학이라”(149쪽)고 평가했던 것과 같은 이유를 고형곤 박사 역시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런 점에서 그 대상의 성격이나 방법론에서 차이가 없지 않지만(특히 228쪽에서 보는 것처럼, 박종홍 박사는 “서양의 현상학과 선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비판하였다 하지만), 한국불교사상사를 보는 관점에서는 고형곤 박사와 『한국사상사 --- 불교사상편 ---』의 저자 박종홍 박사 사이에도 공통분모가 있었던 것 아닐까 싶다.

『선의 세계』와 관련하여, 좀더 천착해 보아야 할 연구주제는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얻어진다. 저자가 선을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대비시켜 연구할 수 있었던 학문적 바탕과 정서는
일본 유학시절에 직 · 간접적으로 선과 서양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특히 근대에 이르러 하이데거가 일본선에 심취하여 선승 히사마츠 신이치(久松眞一)와 밀접하게 교류했는데, 두 사람의 대화는 일본 철학계의 화제였다. 이것이 훗날 그(고형곤)로 하여금 선을 실존철학적 관점에서 탐구하게 된 동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179쪽)

사실, 나는 일본의 교토학파(히사마츠 신이치 역시 교토학파에 소속된 학자였다.)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고형곤 박사를 떠올린 적이 있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니시다가 행했던 것과 유사한 과업을 누가 행했던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우리에게도 선불교를 하이데거나 현상학과 비교한 청송(聽松) 고형곤 선생 같은 분의 작업이 있었다고 봅니다. 청송선생의 작업에 대한 논문이 있긴 합니다만, 니시다에 비하면 많이 외로운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정말 역량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하이데거 · 니시다 그리고 청송 선생의 작업을 함께 공관(共觀)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일본불교의 빛과 그림자』, 20쪽)

여기서 말하는 니시다는 교토학파의 창시자인 니시다 기타로(西田畿多郞)를 가리키는데, 위의 말을 할 때만 해도 그분들의 철학적 성격이나 방법론이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저자의 언급으로 인하여 실제로 고형곤 박사의 선사상과 교토학파의 관계를 좀더 조사해 볼 필요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의 취처론과 관련해서이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부모에 대한 불효가 되며”(110쪽)라고 한 것은, 한용운의 주장의 “바탕엔 유교의 국가관과 윤리관이 토대가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상동)고 하였다. 나는 불교 안에 들어와 있는 유교적 윤리, 유교적 가치관 --- 그것은 참으로 힌두교적 윤리, 힌두교적 가치와 같은 성격의 것이다 --- 을 불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불교(붓다)의 출가정신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맥락에서 힌두교의 윤리와 대비해서 불교의 윤리, 특히 출가정신을 드러내려고 노력해 온 나로서는 관심이 가는 연구주제이다.


보완과 후속작업을 기다리며

이 서평을 맺음하기 전에, 몇 가지 보완해 주었으면 하는 점과 지속되어야 할 작업들에 대해서 말해 두고자 한다.

우선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바로 색인에 대해서이다. 저자는 『우리말 팔만대장경』에 대한 비평에서 그 책의 “다양한 색인”(85쪽)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으로 저자의 저서인 『명저 58선』에는 색인을 붙이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명저 58선』에는 58권만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책이 언급되고 있다. 등장인물 역시 『명저 58선』의 저자들만이 아니다. 따라서 색인을 통해서 누가, 또 어떤 책들이, 어느만큼의 빈도로 다루어지고 있는지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거의 학술서에 가까운, 중수필의 비평문이라 볼 수 있기에 색인이 없다는 것은 매우 허전한 느낌을 준다. 이용에도 불편할뿐더러.

다음으로 저자에게 정말 여쭈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명저는 무엇인가? 제목을 통하여 “58권의 명저를 선택하고 평가한다”고 고지(告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명저’의 기준을 세워놓고 뽑은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명저의 기준」과는 다르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선정기준」을 따로이 세워두었다. 그럴 사정이 있었을 터이다. 그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알고 싶다. 정말 「명저의 기준」을 세워서 다시 살펴본다면 어떤 책들이 살아 남을까? 승만부인이 열 가지 서원을 세웠다가, 다시 세 가지 원으로 줄이고, 마지막에는 하나의 원으로 줄인 것처럼 그렇게 한번 해보면 어떨까? “선정기준에 따른 책 58권”에서 이제 진정한 “명저 10”을 뽑으면 어떻게 될까? 다시 10권에서 3권으로 줄인다면, 그 3권에는 어떤 책들이 들어갈까? 궁극적으로 지난 10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나온 불교책 중에 “최고의 명저”는 무엇인가? 최고는 결코 복수일 수 없다. 오직 하나인 단수일 터이다. 그리고 그렇게 좁혀갈 때 기준으로 삼는 「명저의 기준」을 저자는 어떻게 세울 것인가? 궁금한 일이다. 이러한 나의 질문에 대해서 다른 지면을 통해서라도 한번 제시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 역시 이 담론을 이어가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나는 책이 책을 낳는다고 했다. 책이 책을 낳지 못하면, 그 책은 죽음이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확대재생산해야 한다. 서평이 필요한 이유도, 비평이 필요한 이유도, 독후감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런데 ‘책에 대한 이야기’가 반드시 책을 통해서만, 글을 통해서만 행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다양한 형식과 방법을 개발할 필요도 있다. 『명저 58선』과 같으면, 생존하고 있는 “저자 초청 대화모임”이나 “명저 58선에 선정된 책 저시회” 같은 것도 기획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저자에게만, 저자가 대표로 있는 ‘민족사’라는 하나의 출판사에만 주어진 과제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다면, 그래서 정녕 『명저 58선』이 우리 “불교출판문화사 일백년래 일대사건”이라는 평가에 동의할 수 있다면, 오히려 그 과업은 앞으로의 일백년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불교출판문화계 전체의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명저 58선』은 애시당초 「법보신문」을 통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신문에 연재가 끝난 뒤에도 책으로 탄생되기까지 다시 근 4년 반의 세월이 더 소요되었다. 이 기간 동안 저자는 읽었던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글을 고치고 또 고쳤다. 그렇게 『명저 58선』은 노작(勞作)이라는 평가를 들어서 좋을만큼 땀흘려서 이루어진 책이다. 이 점에서 나의 『책 안의 불교 〜』는 너무나 쉽게 낸 책이다. 연재 끝나고 나서, 그다지 많이 고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소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이 젊음인가? 어리석음인가? 경박인가? 한긴 그랬다 해도 그 결과는 변함이 없었으리라 보지만 ---. 아무튼 이제 다시 출발해야 한다. 나도 세월을 보낼만큼 보냈으니 이 ‘명저 남기기’ 불사(佛事)에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다. 백년 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줄 때를 기다리면서 ----.

(2010년 8월 31일 탈고)